세상적인 성공보다 관계 회복이 중요합니다 (사무엘하18:24~33)
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 심히 아파(33절) 문자적으로 ‘떨리다’, ‘진동하다’를 의미한다. 감정이 북받쳐서 동요하는 모습이다.
오늘의 말씀요약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온다는 말에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승전 소식을 알리고, 압살롬의 안부는 모른다고 둘러댑니다. 이어 구스 사람이 와서 압살롬의
죽음을 알립니다. 다윗은 마음이 아파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웁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아히마아스가 전한 승리 소식(18:24~30)
마하나임 성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멀리서 전령 두 사람이
성을 향해 달려온다는 파수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들이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고 짐작할 만큼 다윗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전령 중에서 먼저 도착한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예상대로 승전 소식을 전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갑니다. 다윗의 관심은 아들 압살롬의 안전에 있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가 바로잡힌다면, 그것은 기뻐할 일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사탄이 패배하고
떠나가는 것은 우리가 쾌재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실패나
죽음을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전쟁의 승패보다 압살롬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다윗에게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 적용 질문: 요즘 내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자녀로서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다윗의 탄식(18:31~33)
아히마아스 뒤를 이어 도착한 구스 사람이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을 전합니다. 그도 아히마아스처럼
반역자 압살롬의 죽음을 다윗이 기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오히려 심히
마음 아파하며 통곡합니다. 그에게 압살롬은 원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다윗의 잘못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이 궁극적으로 가정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더라면!”
하고 울부짖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다윗처럼 후회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 적용 질문: 늦기 전에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완악한 죄성 때문에 가족과 이웃이 고통받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며 회개하길 원합니다.
근심거리 하나 없어지는 것에만 관심 갖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깊은 속뜻을 헤아리는 영적 안목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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