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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ble QT 구약권/사사기 (삿)

(2) 정복 대신 공존을 선택한 어리석음 (삿 1:22~36)

by Stephen. 2015. 9. 4.



정복 대신 공존을 선택한 어리석음 (사사기 1:22~36)

 

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니라
23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스라
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곳의 이름이 되니라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 선대하리라(24절)  히브리어 ‘헤세드’는 언약으로 맺어진 신실함을 가리키는데,

같은 표현이 라합에게도 사용되었다(수 2:12).
*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28절)  하나님은 가나안 주민들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명령하셨다(신 7:1~4).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그들을 남겨 둠으로써 훗날 어려움을 당한다.
  

오늘의 말씀요약  

요셉 가문은 벧엘을 정복할 때 성읍 입구를 알려 준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 줍니다.

그 사람은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짓고 그 이름을 루스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는 못하고 함께 거주하다가 강성한 후에야 그들에게 노역을 시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요셉 가문의 벧엘 정복(1:22-26)  

유다 지파에 이어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복하기 위해 나섭니다. 요셉 가문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순조로운 출발을 보입니다. 요셉 가문은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중요한 성읍 벧엘(창 12:8; 28:10~19; 암 7:13)을

점령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어떤 언약이나 협상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1~2)에 불순종합니다. 인간적인 책략으로 손쉽게 벧엘을 얻고자 배신자의 정보를 취하고

그 대가로 그를 살려 준 것입니다. 그는 헷 족속의 땅에 새로운 가나안 도시를 세워 가나안 문화를 확산시킵니다. 

- 묵상 질문: 요셉 가문의 불순종과 타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요?

- 적용 질문: 세상적인 방식과 타협하려는 유혹에 자꾸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패로 얼룩진 여섯 지파의 정복(1:27-36)

이스라엘의 여섯 지파는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가나안 문화에 점차 깊이 동화되어 갑니다. 요셉 가문의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스불론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그들과 함께 거주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삽니다. 이는 가나안 족속이 주도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

산지로 쫓겨납니다.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정복 사업에 관한 기록이 그들의 경계가 아닌 ‘아모리 족속의 경계’를

설명하는 말로 끝난 것은 여전히 이방 족속이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문화를 근절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건설해야 하는 임무에 실패한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여섯 지파의 정복 과정에서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세상적인 관습이나 문화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 풍조와 타협하며 살았던 저를 용서해 주소서.

하나님 것과 세상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제 안에 들어와 주인 행세하는 세상 풍조를 끊어 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