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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향원정 & 경회루

by Stephen. 2025. 5. 14.

 

경복궁 향원정 & 경회루 (25.5.12)

 

경복궁 향원정: 멋진 반영의 모습이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경복궁 향원정

현재 향원정은 경복궁 중건 이후에 처음 세운 것이지만,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한때 1873년(고종 10년)에 건청궁과 같이 건립했다는 설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하술할 2017년 ~ 2021년 보수 공사 때 문화재청에서 목재 연륜 연대 조사를 통해 

1881년(고종 18년)과 1884년(고종 21년) 두 번에 걸쳐 벌채한 목재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현재는 건립 시기를 1885년(고종 22년)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후 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무사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러나 일부 변형된 부분이 있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건물이 노후화 되었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2012년부터 정밀실측조사에 들어갔고,

2015년까지 매년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기둥을 받치는 주초석 일부가 침하되면서

건물 전체는 물론, 수장재[2] 역시 기울어지고 뒤틀린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2017년 5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전면 해체 보수 공사를 진행했고,

고종 시기와 달라진 부분은 원형대로 복원했다.

소개글 출처 - 나무위키 (경복궁 향원정)

 

 

 

 

 

 

 

 

 

 

 

한국으로 여행을 온 관광객이 많았고, 우리 고유의 전통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그 자리에선 꼭 우리가 여행을 온 외국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ㅎ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의 세심한 문양에 감탄이 되고 정말 아름답다!

 

 

경복궁 경회루: 마치 물 위에 건물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의 웅장하고 멋스럽다!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경복궁 근정전 서편에 위치한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 행사에 사용하던 건물이다.[1] 연못 안에 석재 기단부,

정면 7칸, 측면 5칸의 목조 중루(重樓)와 팔작지붕을 갖춘 무출목 이익공계(二翼工系)의 구조이다.

기둥 상부 주두(柱枓) 아래 날개처럼 생긴 공포 두 개를 두고 그 위에 보가 얹히도록 한 양식이다.

[2] 단일 건물로서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큰 전통 목조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 풍경은 경복궁 안에서도 백미로 꼽혀 만원권 지폐 구권의 뒷면 도안으로 나오기도 한 상징적 건물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해외 어느 일간지에서는 이 경회루가 물에 가라앉은 그림을 기사로 내면서

'한국 경제 침몰'이라는 글귀를 달기도 했다. 

1395년(태조 4년) 경복궁 창건 때 연못을 파고 누각을 세웠으나 지대가 습해 건물이 기울자 1412년(태종 12년)

연못을 대규모로 준설해 동서 128m, 남북 113m에 달하는 사각형 연못을 조성하도록 명했다.

당시 최고의 건축가 박자청이 건설을 맡아 8개월 만에 경회루를 완공했다.

당시의 경회루는 현재의 경회루보다 크기는 더 작았으나 더 호화로웠으며, 3층 높이의 중층 지붕 전각이었다. 

1474년(성종 5년) 3월과 8월에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는데,

이때 경회루를 헐고 다시 지으면서 돌기둥에 아름답게 꽃과 용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소개글 출처 - 나무위키 (경복궁 경회루)

 

 

때마침 수문장 교대의식 조선시대 왕실 호위문화를 상징하는 전통 문화행사를 했는데

조선시대 왕실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배우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경복궁

경복궁(景福宮)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에 창건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法宮)이다.

경복궁은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하였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의 이름은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이곳에서 세종 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반포되기도 하였다.


경복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는데 그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가

270여년이 지난 1867년(고종 4)에 다시 지어졌다. 고종 대에 들어 건청궁과 태원전, 집옥재 등이 조성되었으며,

특히 건청궁 옥호루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경복궁은 계획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되었고,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의 경관을 훼손하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였으며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개글 출처 : 궁능유적본부 - 궁능소개>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