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의 구조와 핵심주제
창세기 1장과 2장은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과 더불어 죄가 없는 장이다.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과 아직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셨던 사명에 관한 기록이 창세기 1장과 2장이며,
또한, 죄에 관련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깨끗하게 정화된
이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관한 기록이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연구자들은 이러한 죄가 없을 때의 사건을 기록해 놓은
성경의 부분들을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성경의 죄가 없을 때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래 어떤 것을 의도하셨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의 몇 가지 드러난 구조를 보면, 당연히 창세기 1장의 내용과 기록 목적에 있어서 연결되며,
전에도 언급했듯이, 물리적인 부분과 비물리적인 부분(영적인 부분)을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의 표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창세기 2장 1절: "다 이루었다"
사실, 성경책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다 이루셨다"는 단어의 사용은 성경에 단 세 번 나타나는데, 첫번째는 창조를 완성하시고 난 직후(창세기 2장 1절)이고, 두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심으로 사람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직전(요한복음 19장 30절)이며,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정화하신 이후에 재창조를 마무리하시고 난 후에 새 예루살렘성이 유황불로 정화된 이 땅으로 내려올 때(요한계시록 21장 6절)이다.
또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6일 동안의 물리적인 창조를 마치시고 난 후에 마지막 일곱째 날에 비물리적인 창조; 즉,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영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것을 모든 창조의 결정적인 완성으로써 인정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 성경에 등장하는 6+1 의 개념
사실, 성경에는 비공식적이지만, 「6+1」의 개념이 등장한다.
첫째는 일주일 속에 포함된 「6일+일곱째 날 안식일」(창세기 2장 1~3절)이며, 둘째는 「6년 동안 경작 + 7년째는 땅을 쉬게하는 안식년」(레위기 25장 1~7절)이다. 그리고 이 안식년이 일곱번 되풀어 되어 49년이 되는 해의 다음 해; 즉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레위기 25장 8~13절)이라고 하여 이스라엘 전 국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해로 삼으라고 레위기 25장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성경의 연대로 계산한 「지구의 역사 6000년 +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지내는 1000년」(요한계시록 20장 2~7절)이 바로 6+1 개념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 6+1의 개념에서 1에 속하는 부분은 모두 "안식", 또는 "참된 쉼"과 관련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4장에 기록된 "세 천사의 메시지"의 마지막 세번째 천사의 메시지에서도 이 "참된 쉼"이 기록되어 있으며,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성도들은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겠다고 말씀하신다.(요한계시록 14장 9~13절)
[요한계시록 14장 9~13절]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세세토록 - 헬라어 αἰών αἰών(아이온 아이온) : "한 시대 속에서 그 시대 끝까지"라는 의미를 가짐. 신약 성경에서 "영원토록", 또는 "영원"이라고 번역된 이 헬라어 αἰών(아이온)은 원래 "한 시대까지", 또는 "속한 시대의 끝까지"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창세기 2장 2~3절: 안식일
성경책이 기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은 "일곱째 날 안식일"이 정확하게 옳다.(*기독교의 거의 모든 교파들이 모두 주중의 첫째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이것은 구 로마교회로 시작된 가톨릭 교리의 유산이며, 성경책에는 오직 "일곱째 날 안식일"만을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가 아직 전혀 없었던 에덴 동산에서 창조를 마치시는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고, 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며, 안식일을 사람에게 주셔서 창조주의 기념일로 지키게 하셨고, 또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 속에 네번째 계명으로써 돌비에 직접 손가락으로 기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 이 사실에 대하여 반박하려면 오직 성경에 기록된 것만을 가지고 반박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절대 성경에서 안식일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기록은 성경에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은 일곱째 날 안식일 만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때는 바로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친 큰 절기 안식일이었는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이 바로 일주일 중의 제 육일(오늘날의 금요일)의 오후 3시쯤(제 구시)이었으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직후에 유대인들은 이제 곧 시작될 유월절의 큰 절기 안식일을 준비하려고 바쁘게 예수님과 두 강도가 죽었는지를 확인한다. 원래 고대 로마제국의 십자가형은 죄인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걸어 놓고, 며칠 동안 고통을 겪다가 죽게 만드는 정말 최악의 극악무도한 사형 방법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지 몇 시간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키고 있던 군병들은 예수님의 팔다리를 꺾지 않고, 옆구리에 창을 찔러서 사람이 죽었다는 증거인 물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고, 일곱째 날 안식일에 무덤에서 쉬심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도 일곱째 날 안식일이 참된 창조주의 예배일인 것을 증거하셨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도 사도들이 예수님께 사명을 받고 초대교회를 세웠을 때도 예배에 관련된 행위나 단어들은 모두 안식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사도행전 1장 12절; 13장 14절; 13장 42~44절; 15장 21절; 16장 13절; 17장 2절; 18장 4절), 주일 중의 첫째날(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구절은 없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7절에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성경구절에서도 역시 "안식(일)후 첫 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안식일을 이미 나타내고 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재정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을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부활하신 날인 주일 중에 첫째날로 바꾸셨다면, 성경에 무슨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을까? 당연히 남기셨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도 당연히 "예배일에"라던지, "주일에", 또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인하여 다시 제정하신 예배일인 첫째 날에" 등과 같이 명확하게 안식일에서 주중에 첫째 날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어떤 말씀이라도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책은 주중 첫째 날 예배에 대한 어떤 단서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분명히, 성경책은 오직 일곱째 날 안식일만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은 세상 역사적으로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셨으며, 십계명 속의 네번째 계명이기도 한 이 "안식일"을 파괴하고자 노력해왔다.
게다가, 사복음서조차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직후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여자들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명백하게 기록한다.(마태복음 28장 1절; 마가복음 15장 42절;16장 1절; 누가복음 23장 54절,56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루살렘 성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무너지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마태복음 24장 3절)"냐는 미래에 있을 일들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시면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태복음 24장 20절)"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이 미래에도 있을 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언급하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면서도 안식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십계명이 모두 폐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거나,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정말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직접 다시 읽어보라!
편견을 버리고, 오직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 만을 들여다보라!
성경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온전히 옹호한다!
구원받는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요한계시록 14장 12절)"이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십계명의 해설인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1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장 17~20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대신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 즉, 십계명의 첫번째 부분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둘째 부분인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직접 실천하신 것임을 잊으면 안된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은 모두 정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자기에게 경배하면 모든 세상을 다 주겠다고 거짓말로 속삭인 것(마태복음 4장 8~11절)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대답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 본인으로서 다른 산에서 선포하신 것이며, 그것이 바로 "팔복"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신 팔복은 십계명의 해설이며, 하나님의 율법은 절대 폐하지 않을 것이며 온전히 다 이룰 것이라고 사탄에게 선전포고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입으로 두말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시며,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면서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고자 노력하는 사탄은 역사적으로 로마교회(로마 가톨릭)를 탄생시키고, 또한 로마교회를 앞세워서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하고 바꾸었으며, 이것은 다니엘서 2장과 7장, 그리고 8장에 명확하게 다 예언되어 있으므로, 누구라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을 주일로 내세워 온 전통적인 주장들은 모두 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명령에 기초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하여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의 정당성은 성경이 아닌 오직 교회의 법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중세 가톨릭의 공식 입장을 대변했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d. 1274)이다. 그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신학대전"에서 단언적으로 주장하기를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는 성경의 넷째 계명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교회법에 기초하였다"고 기록하였다.(참조: Thomas Aquinas, Summa Teologica, 1947, p1702)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런 주장은 그때로부터 약 3세기가 지난 다음에 출판된 가톨릭의 「트랜스 공의회의 교리문답(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1566)」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 말미암아 촉발된 16세기의 치열한 대 신학논쟁에서 가톨릭을 대표했던 신학자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오히려 개혁 신학자들을 향하여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라는 성경 제일주의 원칙에 철저하지 못했다고 꼬집으면서, 이와 동시에 개혁 신학자들이 성경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가톨릭의 교권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개혁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교권적 전통의 결정적인 실례 중의 하나가 바로 신,구교의 구별 없이 주일로 지키고 있는 일요일 신앙이라는 사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톨릭 신학자들은 개혁자들에게 일요일 주일제도 수립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새로운 의식이나 교회법을 제정할 때는 성경의 주장보다도 교권의 주장에 기초해야 한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개혁자들 측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참조: J.N. Andrews and L.R. Conradi, History of Sabbath, 1912 p586~595; Daniel Augsburger, "Sunday in Pre-Reformation Disputations in French Switzerland", 1976, p265~277)
그리고, 다니엘서 7장 23절부터 시작되는 넷째 짐승(로마제국과 작은 뿔; 즉, 로마교황권)에 관한 설명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선지자 다니엘에게 앞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하나님의 법이 사탄의 계획에 의하여 마음대로 바뀔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다니엘 7장 23~25절]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리고, 다니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바로 이 예언에 대한 결과이자 성취로써 넷째 짐승인 로마제국으로부터 탄생한 로마교회; 즉, 가톨릭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을 자신들의 교리와 입맛에 맞게 바꾸어 버렸고, 이것은 세상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이, 종교개혁 이후에도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가톨릭(구 로마교회)이 십계명을 자기들 마음대로 고치면서 바꾸어 놓은 일요일(주중 첫째날) 예배를 다시 성경적인 예배일인 일곱째날 안식일로 바꾸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역사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어떤 개신교회들은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지만, 네째 계명 안식일은 폐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며, 성경은 오직 일곱째날 안식일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데, 그 중에서 한 계명만 딱 떼서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래의 그림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여 주신 십계명과 로마 가톨릭이 바꾸고 지금까지 따르고 있는 거짓된 십계명을 비교하여 보여주는데, 여기서 특별히 가톨릭이 자신들 마음대로 바꾼 것은 바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배하는 일곱째 날 안식일을 없애고, 대신, 가인의 후손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인들의 시대부터 시작되어 로마제국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태양신 숭배의 날이었던 첫째날 일요일을 주일로 지정하여 예배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즉, 다니엘서 7장 25절의 예언이 정확하게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의 십계명은 전혀 폐하지 않았으며, 또한, 영원할 것이고, 창조를 기념하여 사람에게 주신 안식일도 역시 하늘나라에 가서도 지킬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사야 66장 22~2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참고로, 성경이 폐했다고 기록한 것은 오직 제사 및 의식법("의문에 쓴 증서" 도그마, 에베소서 2장 15절; 골로새서 2장 14절)이며, 신약성경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안식일"은 원래 헬라어 원어로는 복수형으로써 "절기나 월삭이나 절기에 속한 안식일들"을 의미하는 유대인들의 관용어구 속의 "절기에 속한 큰 안식일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일곱째날 안식일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이 블로그를 통하여 여러 번 설명했다.
창세기 2장 4~17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물리적, 비물리적 사명을 이루어나갈 사람의 창조
성경의 특징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고 계신다는 것이며, 이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시대와 상황, 또는 그들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이루어지거나 그들에게 오히려 채찍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언약(Covenant)"이라는 단어로 나타내는데, 성경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의 기초는 바로 창세기 1장 28절의 "문화명령"이다. 사실, 이 "문화명령"은 창세기 1장 26절부터 시작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히브리어 "쩨렘": 그림자, 형태)을 따라 그분의 겉모습을 닮도록 창조하셨으며, 이와 동시에, 자신의 모양(히브리어 "데무트": 유사한 것, 이념)을 따라 그분의 생각을 닮도록 창조하셔서, 사람의 안과 밖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대리자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8절의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었다.
[창세기 1장 26~28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래의 표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의 겉(물리적)과 속(비물리적:영적)을 닮게 창조된 사람이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물리적인(겉), 그리고 비물리적인(속) 사명을 받았는지 나타내고 있다.
창세기 1장 26~28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 및 인간에게 주신 사명은 창세기 2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나타난다.
① 하나님의 사명을 실천해 나갈 사람의 창조
- 바로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겉모습)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속마음)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에게 당시 새롭게 창조된 이 지구를 다스리는 사명이 주어졌으며, 사람은 이 사명에 따라 생육하고(물리적인 성장), 번성하여(영적인 성장),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충실(충만하다)해야 했다.
- 특히, 창세기 1장 28절의 "번성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라바(רָבָה)"인데, 이 단어는 내면의 영적인 성장과 그 성장을 주변으로 퍼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단어가 가진 여러 의미들 중에서는 "(활을)쏘다(창세기 21장 20절)"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성경에서 사용된 "죄를 범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원어가 "과녁에서 벗어나다", 또는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는 의미인 "하마르타노(ἁμαρτάνω)"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창세기 1장 28절의 "번성하여(라바:רָבָה)"라는 단어는 원래 사람은 창조 당시에 하나님의 품성을 닮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율법)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결론인 하나님의 사랑을 퍼뜨리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는 영적인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물리적인 사명과 비물리적인 사명에 정확하게 맞게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지난 창세기 2장 7절을 연구한 글에서도 밝혔지만, 사람의 창조에도 역시 물리적인 부분(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과 영적인 부분(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 - 히브리어 원어 "아파르"; 흙, 땅, 진흙, 띠끌, 사람을 물리적으로 구성하는 여러 원소들
*생기 - 히브리어 원어 "하이 네솨마"; "니뉴맛 루아흐 하임(창7:22)"; 생명의 숨, 생명의 호흡, 생명의 영, 성령
- 사람의 생명 없는 형체에 이 하나님의 “(생)기”(하이 네솨마)가 불어넣어졌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영”, (네페쉬)가 되었다고 창세기 2장 7절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 "생령"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하이 네페쉬"이며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숨(욥 41:21)
- 생명(왕상 17:21; 삼하 18:13 등)
- 애정의 자리로서의 마음(창 34:3; 아 1:7 등)
- 살아 있는 존재(창 12:5; 36:6; 레 4:2 등)
- 인칭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해(시 3:2; 삼상 18:1 등)
- 이 "네페쉬"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의해 조성되며(렘 38:16), 죽을 수 있으며(삿 16:30), 죽임을 당하며(민 31:19), 먹히며(은유적으로, 겔 22:25), 구속(救贖)되며(시 34:22), 소성케 되(시 19:7)며, 이 중 아무것도 성경에서 혼이라고 번역된 단어; 즉, "루아흐"에 적용되지 않는데, 이것은 두 용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킹제임스역 성경에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기록된 "네페쉬"를 "영혼"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적으로도, 원어적으로도 옳지 못한 번역이다. 이에 대하여 개정표준역 성경은 원어에 가장 근접하게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 "사람이 산 존재가 되었다(개정표준역)"
② 사람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사명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물리적인 사명을 주셨는데, 이것이 창세기 2장 4~9절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잘 가꾸고 돌보는 사명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물리적 사명이었으며,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에덴동산에 두셨다.
- 8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인 "두시고(두다)"의 히브리어 원어는 "שׂוּם(숨)"이며, 그 의미는 '위임하다, 결정하다, 배치하다, 지명하다, 어깨에 메다, 삼다, 세우다, 민족을 이루다, 담다, 정하다'등으로 구약성경에 539회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리적인 사명; 즉, 정치,사회적,문화적 사명을 위하여 에덴에 사람을 두신 것을 의미한다.
- 또한, 9절에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두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데, 이것은 직접적으로 창세기 2장 15~17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사람의 불순종의 선택과 죄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된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③ 사람에게 주어진 비물리적인 사명
- 창세기 2장 10절부터 14절까지는 에덴동산의 대략적인 위치와 지리적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뻗어나오는 네 강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바로 뒤이어 창세기 2장 15부터 1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비물리적인 사명에 대한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이 드러나 있다. 아래의 그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비물리적인 사명; 즉, 영적인 사명을 잘 보여준다.
-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비물리적인 사명의 실체는 바로 인간을 위하여 모든 좋은 것들만 준비하셔서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 16절에 기록된 "명하여"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צָוָה(차바)"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명령하다, 지정하다, (짐을)맡기다, 전령을 보내다' 등이며, 원어의 의미로 다시 읽어본 16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짐을 맡기시고 전령으로 보내셔서"라는 의미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주신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사람에게 위임하셔서 사람이 그 명령을 스스로 실천하게 하신 것 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 생겨나게 될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파하는 사명까지 포함된 것이었다.
- 또한, 15절에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8절과 똑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두셨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8절에서 사용된 원어와는 전혀 다른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
- 15절에서 사용한 "두다"의 히브리어 원어는 "יָנַח(야나흐)"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부여하다, 세우다, 하나님 앞에 두다, 놓아두다, 간수하다, 남겨두다, 찾다' 등이며, 구약성경에서 73회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유대인들 사이에 놓아두심(사사기 3장 2절 등)", "언약궤 속에 두 증거판을 넣어두심(열왕기상 13장 29절 등)". "만나를 다음 날 안식일 아침까지 간수하라(출애굽기 16장 23절 등)", "여호와 앞에 두다(출애굽기 16장 33절 등)",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사 이방인의 땅에 두시다(이사야 14장 1절)"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인들 사이에 두셔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알게 하려는 하나님의 영적인 목적이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16절과 17절에서는 선악과를 먹는 것에 대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곧 선악과가 순종의 시금석; 즉, 하나님의 율법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선악과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은 없지만, 그것을 먹고 먹지 않고는 전적으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즉,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볼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도 이와 똑같은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에는 인간을 구원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며,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보여준다(로마서 7장 12절). 십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글로써 적어 주신 것인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방법과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하면, 이웃을 (죄된 이기심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인 것이다.
- 십계명은 사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지켜야 할 하나의 원칙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인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사에서 “두신” 또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사명 때문이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인 사명과 비물리적인(영적) 사명을 사람에게 주시고, 그것들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를 주셨다. 일곱째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며 창조주께 예배하는 날로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사명을 이 땅에서 실천하고 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배필"; 즉, 하와를 주셔서 결혼을 완성하신 것이다.
- 아래의 그림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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