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이신 주님 안에서 풍성함을 누립니다 (요한복음 10:1~10)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양의 문(7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문이시다(14:6 참조).
* 꼴(9절) 양을 키우는 목장의 목초. 여기서는 예수님 안에서 얻는 풍성한 공급과 영원한 만족을 뜻한다.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하십니다. 문지기는 목자를 위해 문을 열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양의 문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목자와 양의 관계(10:1~6)
예수님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문을 통해 우리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목자가 아니라, 도둑이요 강도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보내신 참목자가 아닙니다. 목자가 아닌 그들은 양과 같은 하나님 백성을 이끌 자격이 없습니다.
목자는 자신이 돌보는 양들에게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압니다. 비슷해 보여도 누가 누군지 다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불러 줍니다. 그만큼 목자는 자기 양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에게 길들여진 양은 결코 타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자기 목자의 음성에만 반응을 보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름으로써 자신을 부르고 인도하는 사람이 목자임을 증명합니다.
이것이 양과 목자의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말씀하신 목자와 양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목자이신 주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의 문 되신 예수님(10:7~10)
양은 목자 곁에 있어야만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양의 문’이란 ‘양들이 우리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킵니다. 당시 우리에는 문짝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목자가 출입구에 누워 밤새 양을 지키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따라서 문의 역할을 하는 목자를 통해서만 우리를 넘나들 수 있었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보호와
돌봄을 받는 양은 행복합니다. 그분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풍성한 꼴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영생의 진리에서 멀어지게 해 멸망의 길로 이끄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양을 훔치러 오는 도둑이나 강도와 같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이십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기대하나요? 오늘 내가 소망하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인도를 따라 더욱더 풍성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세상이 두렵고 험할지라도,
연약한 저를 친히 이끄시는 선하신 목자 예수님으로 인해 오늘도 힘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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